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죽음의 동굴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백백교 사건 그날을 조명했습니다.
백백교 사건은 1982년부터 1937년까지 사이비 종교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그의 제자 문봉조 등이 10년동안 전국 곳곳에서 80여회에 걸쳐 3백여명의 남녀노소 신도들을 살육한 사건입니다.


어느 날 국과수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대원님의 머리를 돌려달라는 외침은 한 달간 매일매일 걸려왔습니다. 포르말린에 담긴 머리가 부검실에 있다는 괴담,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국과수 부검실에 존재했던 대원님의 머리가 공개되었고 이를 본 이들은 경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포르말린 병에 담긴 대원님의 머리는 눈코 입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얼굴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원님의 머리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대원님의 정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였고 그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 보관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의 충격적인 범죄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동두천의 한 동굴에서는 무려 4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심지어 갓난아기를 업은 채 그대로 매장된 시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암매장 현장이 발견됐고 무려 300구가 넘는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 살인에 가담한 사람만 18명. 이들은 2, 3명씩 짝을 지어 살인을 저지른 살인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이 사람을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재판정에서 하나같이 대원님의 뜻에 따라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원님은 바로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


일제 강점기 절망으로 내몰린 조선인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백백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말하고, 백백교를 믿으면 독립 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한 사람의 흰색으로 천하를 희게 한다는 백백교의 전용해는 신통력이 대단했고 이에 전재산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바치는 이들이 줄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신통력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종이로 만든 간이벽 뒤에 숨어 심복이 사람들과 하는 대화를 엿듣고 신통력을 통해 아는 것처럼 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심복들을 시켜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악행이 심해질수록 그의 말은 맹신하는 신도들이 넘쳐났습니다.
이에 전용해는 금광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신통력으로 금맥을 찾았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렸고, 이에 전재산을 탕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주 작은 속임수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백백교는 신도들을 가족들과 분리시켜 철저히 고립시켰습니다. 전국 50여 곳에 피난처를 지정하고 피난처에 있어야만 살아남는다고 세뇌시켰습니다. 특히 피난처는 오지, 산간벽지에 마련해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왕래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이에 종교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의심을 한다면 신도들 앞에서 철저하게 응징하며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가족 몰살 주의를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어도 죽였고, 신도가 많아져도 죽였습니다. 그렇게 살해된 사람이 300여 명에 달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 없는 교주 전용해는 신비주의로 무성한 소문들을 만들며 자신을 신격화시켰습니다.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없게 만든 것입니다.
백백교의 만행들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재산, 심지어 가족까지 교주에게 바치게 했는가하면 주문을 외우면 금이 쏟아진다는 금광 사기극까지 펼쳤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교주는 여신도들을 애첩으로 삼고 성착취도 벌였습니다.


교주 전용해는 자신을 불신하는 신도들을 불러 살해했고, 또 자신의 얼굴을 본 신도들을 죽이고, 그 자식들까지 암매장을 시켰습니다. 경기도 동두천의 마차산 한 동굴에서는 7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이 백백교의 광신도가 되어 재산뿐만 아니라 동생까지 전용해에게 바친 유곤용은 전국을 헤매다가 백백교의 핵심 간부를 만나 그의 환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전용해와 만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백백교의 광신도였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전용해에게 바친 여동생은 전용해의 첩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곤용은 진심을 숨기고 그들에게 접근했고 이들이 방심한 틈을 타 전용해를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전용해. 신비주의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알 길이 없어 수배령까지 내려졌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못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경기도 양평에서 전용해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70명이 넘는 병력이 투입되어 찾아낸 전용해는 이미 시신이 된 뒤였습니다. 정황상 자살로 보이는 전용해. 그런데 얼굴 일부는 들짐승이 물어뜯은 상태라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용해의 아들은 그가 전용해가 맞다고 했고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은 백백교 사건을 반가워했습니다. 그들은 "사이비를 믿는 조선인은 미개하다. 일본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수많은 신문에 백백교 사건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사도 3년간 진행됐습니다. 자신들의 나쁜 짓을 감추고 눈을 돌리려는 수작이었던 것입니다.


악마의 종교 백백교의 최후는 처참했습니다. 교주 전용해는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도망을 쳐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일제는 이 범죄를 저지른 백백교 간부들을 당시 독립운동가들 처벌을 위해 만든 '보안법'으로 처벌했습니다.
백백교 사건은 재판에서 간부 14명의 사형이 확정됐고 교주 전용해의 머리를 포르말린 병에 넣어 영구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범죄자 두뇌 표본으로 삼아 연구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추측됐습니다.

그 후 계속 국과수에 보관되었던 전용해의 머리는 지난 2011년 화장되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사실 전용해의 백백교는 그의 아버지 백도교를 이은 것이었습니다. 수법이 비슷하다 못해 흡사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 모두 인천교, 도화교 등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황동한 것이 확인되어 충격을 안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이 만들어진 사이비 종교, 이는 핍박과 고통으로 절망만 가득한 시대를 사는 이들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하나의 범죄인 셈. 알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 그 믿음이라도 붙들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사이비 종교였습니다.